대쾌도에 나타난 광희문과 택견

Posted by Patchman
2015.03.09 14:22 Taekkyon/택견





대쾌도에 나타난 광희문 택견





| 대쾌도




유숙은 19세기의 대표적 화원 화가 중 한 사람으로서, 본관은 한양, 자는 선영, 또는 군, 호는 혜산이다. 그는 산수, 인물, 화조 등 여러 분야의 그림을 잘 그렸는데, 특히 18세기에 유행했던 풍속화를 계승한 점이 주목된다. 그의 풍속화 중 대작이 바로 <대쾌도>이다. 이 작품은 한양의 사대문중 동쪽에 있던 광희문(수구문)의 남쪽에서 벌어진 유희장면을 그렸다고 전한다.


화명 중앙에 벌어진 두 패의 씨름과 택견판과 이를 둘러싸고 구경하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그렸다. 씨름판을 중심으로 우상단에는 성벽이, 나머지 상하면에는 산수배경이 채워져 있는데 산수와 인물의 상관관계는 썩 매끄럽지 못한 편이다. 이런 점은 성벽 묘사 부분의 경직된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씨름판을 둘러싼 다채로운 인무들의 모습과 자세, 복장 등은 모두 세밀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어 당대의 풍속을 잘 증언하고 있따. 인물들 중에서 특히 재미있는 부분은 중앙 좌측에 나막신을 벗은 채 퍼질러 앉아 장죽을 든 노인, 그 반대쪽에서 서서 엿을 파는 사내, 하단 좌판을 벌이고 술을 파는 노점상과 돈을 꺼내는 한량, 상단 성벽 구석에서 노상 방뇨하는 소년 등이다.


한편 화면 좌상단에 "대쾌도 병오년 온갖 꽃들이 화창하게 핀 시절 격양세인이 강구연월에서 그리다"라는 제관이 있어 유숙이 20세 때인 1836년 그린 작품으로 보인다. 여기서 '격양세인'이란 태평성대를 만나 땅을 두드리며 노는 사람이란 뜻이며, '강구연월'도 태평성대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풍속도는 당시 시대상을 태평성대로 비유하여 묘사한 것으로, 비록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조선말기 풍속화중 역작이라 할 만하다.


참고로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신윤복의 작품으로 전하는 대쾌도가 전하는데, 이작품에 비해 세장 한 화폭에 상단에 산수배경과 인물군이 추가되어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동일한 구도를 따르고 있다. 화풍상으로 볼 때 국립중앙박물관본은 신윤복과 거리가 있는 19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자료 : 문화콘텐츠닷컴)






| 광희문



 


서울 중구 광희동에 있는 조선의 사소문으로 시구문, 수구문이라고도 하였으며 서소문과 함께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다. 1396년(세종 4) 개축된 것으로 추측된다. <숙종실록>에 1711년(숙족 37) 민진후의 건의로 금위영으로 하여금 개축하게 하고, 문루는 목재를 구하기가 어려우므로 후에 개축하기로 하였다는 기사가 있으며, 1719년 문루를 세워서 광희문이라는 현판을 걸있다. 그 후 1975년 도성복원공사의 일환으로 석문을 수리하고 문루를 재건하였다.

(자료 : 두산백과)
















| 결련택견



 



대쾌도에 나와있는 택견판의 모습은 택견의 모습 중 결련택견의 모습으로 마을끼리 편을 갈라 승부를 결정하는 민속경기놀이이다. 일본강점기 초기 서울 서북쪽의 서리들의 마을인 윗대와 동남쪽 동대문, 광희문 일대 군총들이 모여 사는 마을인 아랫대의 사람들이 결련태를 하였고, 보통 단오날 초저녁에 양편 마을 사람들이 넓은 공터에 모여 판을 벌였다.








| 택견





택견은 우리나라 전통무술의 하나로, 유연한 동작으로 손과 발을 순간적으로 우쭉거려 생기는 탄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고 자기 몸을 방어하는 무술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택견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삼국시대부터 이미 택견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무인들 사이에서 성행하는 무예로 발전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중화한 무술로 되어 무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널리 행하게 되었다.


이렇게 문헌상 기록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택견은 일본강점기를 거치면서 자취를 잃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다행히 조선 말기의 택견꾼 송덕기가 유일하게 생존하여 택견의 맥을 이을 수 있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 택견은 일본 무술들이 토착화하는 여세에 뒷전으로 밀려났다. 특히 6.25전쟁 이후에 만들어진 태권도가 택견의 전통을 계승했다는 명분을 주장함으로써 1970년대 이후에는 태권도와 택견이 동일한 것으로 잘못 알려졌다. 그러나 택견과 태권도는 역사적, 기술적으로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별개의 것이다.


택견은 1970년대 초부터 송덕기로부터 택견을 배운 신한승의 노력으로 1983년 6월 중요무형문화재 제 76호로 지정되었고, 송덕기, 신한승이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1990년대 들어 생활체육으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며, 2011년 11월 28일 전 세계 무예 중 최초이자 유일하게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택견의 계보와 당시 중구의 택견꾼




박무경


구리개(중구) 택견의 명인 박무경은 고종19년 종로 택견의 명인 임호와 같은 연배로서 구리개(중구)에서는 그를 당할 자가 없었다 한다.


구리팔개 또는 박팔개라고도 불리웠으며 거한에다 천하장사라 씨름판이나 택견판에서 그와 싸우기를 꺼려 했다하니 그의 택견 솜씨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히 짐작이 가는바라 하겠다.


그는 발차기의 명수였으며 그 거구가 한 번 땅을 짚고 공중으로 몸을 솟구쳤다하면 바람이 일 정도였다 한다. 조선 포병대 하사관 시절 박격포를 메고 광화문의 해태상에 뛰어올라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김홍식


김혹식은 세검정에서 태어났고 여러 택견꾼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 당시에는 대부분이 스승의 땀 냄새를 맡아가며 스승의 기술뿐 아니라 정신마저 배우는 집지사사의 기술전수라기보다는 택견하는 모습을 보고 그저 흉내를 내고 있으면 길 가던 택견꾼들이 보고 한두 가지씩 기술을 가르쳐주어 배우곤 했다 한다.


나중에 유도를 배워 해방 직후 한국인으로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단자가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측근에서 경호를 맡기도 하였으며 이승만 박사 경호시절 만주에서 권총 든 일경을 순식 간에 잡아 낚아채어 강물로 던져버렸다는 일화가 있다.


해방 후 경기도 보사국장과 전라남도 내무국장을 지냈는가 하면 유도회, 육상연맹, 축구협회 등의 체육단체의 임원이 되어 체육계를 무대로 활동하기도 했다한다.


그의 택견 동작은 매우 커서 거침이 없었으며 오늘날 활개짓의 기본이 되는 활개짓 돌리기는 김홍식 옹이 즐겨 쓰던 활개짓이다. 하지만 노익장을 자랑하던 그도 중풍으로 쓰러져 1984년 8월 20일 92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 역사적 사료(택견)를 활용한 문화행사 기획 및 발전방안








1. 택견 문화공연

조선시대 택견판 원형을 재현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유일한 장소 중구. 중구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세계 유일의 무예 택견공연을 선보이고, 택견판이 벌어지던 중구 지역에 대해 소개한다.


* 전통적 성격의 공연과 함께 K-POP이 접목된 퓨전 공연으로 관광객들이 함께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택견문화공연



2. 택견 체험학습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서울, 경기지역 청소년들이 택견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학습장 개설. 전통 의상인 한복을 입고 고구려 무용총 벽화, 유숙의 대쾌도, 백범 김구 이야기등 택견과 관련된 역사를 함께 배운다.


* 전통과 역사 체험으로 최근 수요가 급증하는 체험학습 시장의 새로운 대안과 모델 제시



3. 중구청장기 생활체육 택견대회

중구청장기 택견대회를 통해 전국 택견인들이 중구에 모일 수 있는 축제의 장을 마련한다. 중구에서 열리는 택견대회는 200년전 대쾌도의 택견판을 재현하는 역사적 의미가 있으며, 아직 택견인들 조차 잘 모르고있는 중구와 택견의 역사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된다.



4. 청춘택견(복지관 건강 프로그램)

택견은 수천년의 역사를 거치며 한국인의 생체에 가장 적합하게 맞춰진 운동으로 전 세계 무예중 유일하게 80, 90대의 노인들도 수련이 간으한 운동이다. 중구 복지관, 요양원 청춘택견 보급을 통해 중구 구민들이 연명 100세가 아닌, 건강 100세를 맞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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